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 (문단 편집) == 히틀러의 협력자 == * [[베니토 무솔리니]] -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을 추축국에 끌어들였고 본인 역시 아돌프 히틀러와 애증관계에 그를 추종하고 지지하는 입장이자 같은 추축국의 수장으로서 유럽 침략에 뜻을 같이하는 등 같은 길을 걸어갔다. 무솔리니는 초반의 히틀러를 나를 따라하는 아류 중 정신이 조금 이상한 바보병신으로 보아 히틀러를 멀리했지만 히틀러는 달랐다. 히틀러는 무솔리니처럼 의심병이 많았지만 무솔리니만큼은 자신의 우상이자 아이돌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극렬히 추종했는데 [[안슐루스]] 도중 무솔리니가 히틀러에게 독일의 개입을 받아들이겠다는 소식을 전하자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이 은혜를 잊지않겠으며 세상 모두가 등지더라도 나만큼은 당신에게 달려가 도와줄 것 입니다."라고 전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안슐루스|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때 무솔리니가 보여주었던 태도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감사로,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 비판적으로 판단하기를 삼갔다. 오히려 언제나 이탈리아를 대등한 상대로 여기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입장이 바뀌게 되어서 오히려 아돌프 히틀러가 큰 일을 항상 상의없이 돌출적으로 하는 태도와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일이 끝난 다음에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행동에 커다란 불만을 품었고 그로 인해 [[날빌|엄청 급하게 준비한]] 그리스 침공때는 이번에는 히틀러가 신문으로 이탈리아의 그리스 정복을 보게될거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잘나가는 히틀러를 질투하였다. 그리스 침공 후 이탈리아군이 그리스 국경을 넘었소. 라고 히틀러에게 너도 좀 놀라고 약오르라고 싱글벙글 말했지만[* 실제로 히틀러가 크게 놀랐으니 [[병림픽|목적은 이룬 셈]].][*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와 키레나이카에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그 이상은 딱히 바라지도 않았다. 힘도 약한 주제에 무모하게 그리스 원정을 시도했으며 나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한마디 의논도 없었다. 이는 완전히 무의미한 전투였다. 이탈리아에게 바라는 유일한 최선은 아무 것도 하지않는 것이며 이것만 지켜주었다면 이탈리아가 매우 고마웠을 것이였고 값진 선물도 챙겨줄 생각이였으며 로마 제국을 원한다면 그것이 이탈리아가 동맹으로 싸우는 것보단 저렴했을테니 줄 생각이였다.] 그리스 침공조차 히틀러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고 이탈리아가 시칠리아에 상륙당한 소식을 듣자 극도로 분노한 히틀러는 이탈리아로 직접 찾아가서 무솔리니에게 [[몰락/패러디|온 세상 모든 욕을 한다.]] 이후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자 내심 무솔리니의 뜬금없는 돌발행동에 화가났던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되려 기분상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1943년 [[이탈리아]]가 조기에 패망하고 히틀러의 걱정대로 [[히키코모리|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방에 박혀]] 우울증에 시달리다 감옥에 갇힌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구출된 후 생명의 은인이 된 히틀러를 질투하거나 의심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화해한 듯 한데[* 사실 이 조차도 선택사항이 없는게 크다. 무솔리니는 죽을 때까지 히틀러가 석연찮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솔리니는 나치 패망 직전까지 히틀러와 같이 다니면서 히틀러의 신임을 얻었다.[* 히틀러 암살작전 이후에 기존 간부들에 대한 편집증이 스탈린 수준으로 발전해버린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무솔리니에게 암살현장을 보여주며 저는 제가 신용할 수 있는 자가 그대인걸 압니다. 제가 그대를 저의 [[깐부|가장 친한, 유일한 친구]]로 생각하는 걸 알아주십시오. 라는 대단히 스윗한 말을 남기며 최후의 순간이 다가올 때에서야 서로를 완전히 신용하게 되었다. 야속하게도 서로 좋은 친구가 됐을때는 추축국은 이미 패망 직전이였고 역으로 생각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의기투합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진 되지않아 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이탈리아 왕국의 국가원수로서 추축국 가입과 무솔리니의 개전을 허가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벌였으나, 무솔리니가 전쟁을 초반부터 줄줄이 말아먹기만 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국왕 권한으로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전쟁을 중단한 덕분에 전범으로써의 처벌을 면했다. 그러나 결국 왕정을 유지시키지 못했다. * [[쇼와 덴노]],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 우선 고노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을 추축국에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총리인 도조는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적극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협력했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도조를 환상의 파트너로 여겼다. 하지만 실상은 최악의 파트너에 가까웠다. 아돌프 히틀러는 도조가 소련을 공격해 주길 원했는데 도조는 미국을 공격했고 거기서 잡은 손을 뺐으면 좋았을 텐데 아돌프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결국 두 사람은 사이 좋게 자폭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히로히토는 고노에가 주도한 추축국 가입과 도조가 주도한 태평양 전쟁을 국가원수로서 허가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아돌프 히틀러의 협력자 중 한 명으로 볼 수 있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을 유지했던 [[스페인]]의 수장이었지만 사실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와 협력했고 프랑코 본인도 아돌프 히틀러에게 우호적인 성향이라 사실상 협력자에 속한다([[게르니카|독일군으로 국내 반대 세력을 쓸어버리기도]] 했으니). 그래서인지 대체역사물(추축군이 패배했다는 실제의 거시역사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및 히스토리 픽션에서는 프랑코 정권 역시 추축국으로 참전하는가 하면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으로 나치 잔당이 도망간다는 설정으로 응용되기도 한다(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의 협력자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렸다. 종신 집권을 한 것은 물론, 왕정이 부활한 다음에도 추종자들이 있을 정도다. * [[호르티 미클로시]] - 국왕이 없던 헝가리의 섭정이자 바다 없는 내륙국의 해군 제독이라는 참으로 괴이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총리인 기울라 굄뵈시(Gyula Gomboss)를 시켜서 추축국 구성안을 내놓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헝가리가 추축국 준 메이저급의 대우를 받게 한다. 그러나 이후 전세가 기울자 헝가리 나치당이라고 할 수 있는 [[화살십자당]] 당수였던 [[살러시 페렌츠]]를 잡아 가두고 연합군에 항복하려 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인간병기 [[오토 스코르체니]]에게 그의 아들을 납치하도록 해서 저지시킨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와 페렌츠에 의해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해외로 쓸쓸히 망명해야 했다. 그 결과 부다페스트는 소련군에 끝까지 저항하다 함락당했고 헝가리 여성들은 베를린에서 자행되었던 것과 같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 [[이온 안토네스쿠]] - [[루마니아]]의 총리로 2차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군이 루마니아에 진출하자 아돌프 히틀러의 충실한 개가 되어 독일에게 석유를 마구마구 퍼준다. 이후엔 독소전쟁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소련의 맹공으로 국토가 점령당하고 안토네스쿠는 잡혀서 사형당한다. * [[필리프 페탱]] - [[샤를 드골]]이 히틀러와 맞서 싸운 프랑스 지도자라면 이쪽은 히틀러의 꼭두각시가 된 프랑스 지도자이다. 히틀러가 프랑스에 세운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의 국가수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